희귀 식물 소개와 유래

사라진 향신료 ‘산초’의 역사

peace10 2025. 7. 30. 15:38

향신료

1. 산초란 무엇인가 – 전통 향신료의 정체

‘산초’는 초피나무(Zanthoxylum schinifolium) 혹은 **제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의 열매를 건조해 사용하는 전통 향신료로, 한국에서는 주로 **제피(제피나무의 열매)**와 산초(초피나무의 열매)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식물 모두 향이 강하며 혀 끝을 알싸하게 저리게 하는 특유의 풍미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산쇼올(sanshool)**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산초는 예로부터 생선이나 육류의 비린내를 잡고, 체내의 습한 기운을 몰아내는 데 유용한 식재료로 쓰여 왔으며, 특히 조선시대의 궁중 요리, 사찰 음식, 민간 요리에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한방에서는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순환시키며, 구충·소화 촉진 작용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비가 잦고 습한 남부 지방에서는 산초나 제피가 된장을 만들거나 생선을 삭힐 때 부패 방지와 방부 효과를 위해 필수적인 향신료로 사용되었고, 이는 단순한 조리재료를 넘어 지방 식문화의 중심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2. 산초의 역사와 전통 식문화 속 자리

산초는 고려시대 문헌과 조선 초기 요리서에도 기록이 남아 있으며, 『산림경제』나 『규합총서』, 『음식디미방』과 같은 전통 조리서에서 산초는 향신료이자 약재, 심지어 생선 발효의 촉진제로 자주 등장합니다.
예컨대 『음식디미방』에는 “미꾸라지 지짐에는 산초를 으깨어 넣을 것”이라는 표현이 있으며, 이는 당시 향신료 중 산초가 가진 풍미가 비린내 제거뿐 아니라 요리의 ‘균형’을 잡는 기능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궁중 요리에 산초 껍질을 말려 기름에 볶아 향을 더한 ‘산초유(山椒油)’**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된장 속에 산초 가지를 넣어 발효 균의 균형을 맞추는 데 사용하거나, 김치를 담글 때 풋열매를 넣어 향을 풍성하게 하고,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활용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가공 식품과 인공 조미료가 대중화되며 산초는 점차 식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특히 수입 향신료(후추, 카레 등)의 등장과 함께 전통 향신료의 자리가 좁아지며 사라진 조미 소재가 되었습니다.

3. 산초의 복원 가능성과 현대적 활용

최근에는 로컬푸드와 전통 재료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산초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제주 지역에서는 자생 산초나 제피나무를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산초 농가가 다시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천연 조미료, 발효 보조제, 건강식재료로 산초를 가공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부 한식당에서는 산초소금, 산초기름, 산초잎장아찌 등을 메뉴에 도입해 전통의 맛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일본의 ‘와사비’나 인도의 ‘카다멈’처럼 향신료 고유의 풍미로 지역성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또한 식물학자들은 산초나 제피가 기후 변화에 강하고 병충해에 비교적 내성이 높은 나무라는 점에 주목하며, 자생 수종으로서의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향신료로서의 풍미뿐 아니라, 지역 자원과 생물다양성 복원의 측면에서도 산초는 여전히 살아있는 전통 재료이며, 더 나아가 ‘잊힌 향신료’에서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산초를 식탁 위로, 들판과 숲의 식물 목록 속으로 되돌려야 할 때입니다.